검색결과 리스트
살아있는기성에 해당되는 글 1건
- 2014.06.18 살아있는 ‘바둑화석', 100세 우칭위안
100세다. 바둑 하나로 20세기를 가로질러 21세기까지 그 영향력은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다. 6월16일 100세 생일을 맞이한 우칭위안(吳淸源, 오청원, 1914년 음력 5월19일 중국 푸젠성 출생, 본명은 吳泉)의 페이스북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중일을 비롯한 전세계 바둑인의 축하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다.
일찍이 바둑계에서는 최고의 존경을 담아 ‘살아있는 기성(棋聖)’이란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였다. ‘바둑의 성인(聖人)’이라는 ‘기성’의 칭호는 그동안 일본 바둑계에서 슈사쿠(秀策·수책)와 도사쿠(道策·도책), 이 두 기사가 받았지만 모두 사후의 일이었다. ‘살아있는 기성’은 지금껏 우칭위안이 유일하다.
그의 인생은 현대바둑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느 분야에나 천재들이 있고 바둑계에도 많은 천재가 있었지만 그의 행마와 생각은 다른 어떤 천재들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우칭위안 전의 바둑과 후의 바둑이 있을 뿐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다.
100년의 인생이다. 큰승부와 피를 말릴 만한 상황도 꽤 많았지만 우칭위안의 상징성이 강한 2판의 바둑 배경과 20세기 바둑의 전설이 된 ‘십번기’로 간추려 그의 100세 인생을 간략히 살펴본다.
○● 덤의 발견
1938년 일본기원이 ‘덤’을 도입하기 이전엔 모든 바둑은 덤 없는 바둑이었다. 정확히는 우칭위안이 특별히 흉내바둑의 파격을 선보이기 전까진 덤에 관한 규정의 필요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덤을 기본규칙으로 한 오늘날의 ‘호선’ 바둑은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바둑을 ‘가문의 직업’으로 여기던 일본에서 공식대국은 치수제였다. 덤이 없는 호선(互先 흑백을 교대로 잡음), 선상선(先相先 흑2번 백1번), 정선(定先 흑만 잡음), 선이선(先二先 흑2번 두점치수1번)과 같은 치수제로 실력의 높고 낮음을 나눴다. 4판 이상의 승수차이가 나면 치수를 바꿨는데 이런 식의 치수고치기를 ‘쟁기(爭棋)’라고 했다. ‘선(先)’은 덤 없이 흑을 잡는 것을 뜻한다.
우칭위안의 상상력은 덤없는 바둑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소년 우칭위안은 ‘괴동환(怪童丸)’이라 불리며 동시대 일본바둑의 촉망받는 인재이자 바둑 선배였던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1909년~1975년)를 상대로 자신의 발상을 시험한다.
1928년 가을, 14세의 바둑신동 우칭위안은 어머니 서문(舒文), 맏형 완(浣)과 일본에 왔다.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와 일본 바둑계인물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우칭위안은 독학을 통해 13세에 일본 중견프로와 선으로 동등하게 둘 수 있었다. 1929년에는 4단들을 선으로 연파해 드디어 괴동환 기타니 미노루와 숙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이때 엄숙한 승부를 기대하던 기타니는 흉내바둑을 보고 큰 모욕감을 느낀다. 이 바둑은 덤의 부담이 없는 흑(우칭위안)이 중앙 천원에 첫수를 두고 나머지를 백과 똑같이 대칭되는 점에 따라두는 흉내바둑이었다. 덤이 없다면 흑은 언제나 이 수법을 통해 어떤 상대든 편하게 상대할 수 있다. 바둑판의 좌표는 상하좌우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교대로 한수씩 두므로 언제든 그 대칭을 둘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우칭위안은 이때부터 중앙의 가치, 혹은 전체 바둑의 균형을 위주로 한 포석과 정석의 활용에 대한 ‘신포석’을 나름 구체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칭위안의 흉내바둑은 이후 ‘덤’이란 개념과 룰을 도입하게 한 촉매제가 되었다. 덤이 있는 현대바둑은 그 이전 덤이 없는 치수제 바둑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길을 걷게 된다.
○● 신포석
귀에서 변, 변에서 중앙으로 발전한다. 바둑의 논리다. 물론 타당하다. ‘신포석’은 이런 이론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우칭위안은 ‘전체의 균형’, ‘조화’를 중시하는 좀 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신포석이다. 신포석은 1933년 기타니 미노루와 우칭위안이 함께 제기했다. 야스나가 하지메(安永一)가 글로써 두 사람의 생각을 담았다. 세 사람의 공저가 된 [바둑혁명, 신포석]은 당시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야스나가의 시니컬한 ‘글빨’이 바둑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바둑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신포석과 바둑혁명’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말이다.
신포석의 ‘상징’이 된 사건은 일본의 마지막 바둑명인, 슈사이 명인의 환갑기념 대국이다. 기념대국에서 우칭위안은 3·三과 화점, 천원을 차례로 놓는 신포석을 시도했는데, 3·三을 포함한 이런 수법들은 당시 소목중심의 일본바둑에서 ‘금기’의 수였다. 최병준 2014-06-17
더보기 : http://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13&num=519267
[중국갑조] 6전6승! 한국기사가 점령한 14라운드 (0) | 2014.09.15 |
---|---|
이세돌의 힘! 스웨를 녹였다 (0) | 2014.06.23 |
[중국리그] '풍운아' 이세돌, 또 4패빅 (0) | 2014.06.08 |
유럽 첫 프로기사는 슬로바키아의 ‘파볼’ (0) | 2014.06.02 |
한국용병, 갑조리그 대활약! (0) | 2014.05.23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