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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16 장주주, 루이와의 대화 '바둑이 없으면 내 인생도 없어요'
- 2014.01.10 '명예의 도박' 10번기, 이세돌-구리 '치수'도 고칠까?
‘현대 바둑의 창시자’ 우칭위안 100세로 영면
‘바둑 기성(棋聖)’으로 추앙받던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이 11월30일 오전1시 11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100세. 영결식은 친족장으로 진행되며 후일 별도로 작별의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오다와라(小田原)시의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 우칭위안 선생은 지난 6월16일이 100세 탄생일이었다. 7월23일에는 요미우리(讀賣)신문사 주최의 백수(百壽) 축하연이 도쿄(東京) 치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요미우리 신문사 본사에서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1914년 음력 5월 19일(양력으로는 1914년 6월 12일)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난 우칭위안 선생은 바둑을 좋아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일곱 살 때 바둑을 배웠고, 1928년 일본의 세고에 겐사쿠(瀬越憲作․1889∼1972) 문하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시작했다.
1933년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1975) 5단(당시)과 함께 ‘신포석(新布石)’을 발표했고, ‘흉내 바둑’, ‘3-三․화점․천원 착점’ 등 반상에서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하며 현대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다.
특히 1939년부터 시작된 기타니 미노루 7단(당시)과의 치수고치기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 1인자에 올라섰고, 이후 1956년까지 이어진 가리가네 준이치(雁金準一), 후지사와 구라노스케(藤澤庫之助),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이와모토 가오루(岩本薰) 등과의 치수 고치기 십번기에서도 잇달아 승리하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11차례 이어진 10번기 총 전적은 10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우칭위안 선생은 1984년 기사직을 은퇴했으며, 문하에 린하이펑(林海峰)․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두고 있다. [자료 | 한국기원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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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다. 바둑 하나로 20세기를 가로질러 21세기까지 그 영향력은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다. 6월16일 100세 생일을 맞이한 우칭위안(吳淸源, 오청원, 1914년 음력 5월19일 중국 푸젠성 출생, 본명은 吳泉)의 페이스북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중일을 비롯한 전세계 바둑인의 축하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다.
일찍이 바둑계에서는 최고의 존경을 담아 ‘살아있는 기성(棋聖)’이란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였다. ‘바둑의 성인(聖人)’이라는 ‘기성’의 칭호는 그동안 일본 바둑계에서 슈사쿠(秀策·수책)와 도사쿠(道策·도책), 이 두 기사가 받았지만 모두 사후의 일이었다. ‘살아있는 기성’은 지금껏 우칭위안이 유일하다.
그의 인생은 현대바둑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느 분야에나 천재들이 있고 바둑계에도 많은 천재가 있었지만 그의 행마와 생각은 다른 어떤 천재들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우칭위안 전의 바둑과 후의 바둑이 있을 뿐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다.
100년의 인생이다. 큰승부와 피를 말릴 만한 상황도 꽤 많았지만 우칭위안의 상징성이 강한 2판의 바둑 배경과 20세기 바둑의 전설이 된 ‘십번기’로 간추려 그의 100세 인생을 간략히 살펴본다.
○● 덤의 발견
1938년 일본기원이 ‘덤’을 도입하기 이전엔 모든 바둑은 덤 없는 바둑이었다. 정확히는 우칭위안이 특별히 흉내바둑의 파격을 선보이기 전까진 덤에 관한 규정의 필요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덤을 기본규칙으로 한 오늘날의 ‘호선’ 바둑은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바둑을 ‘가문의 직업’으로 여기던 일본에서 공식대국은 치수제였다. 덤이 없는 호선(互先 흑백을 교대로 잡음), 선상선(先相先 흑2번 백1번), 정선(定先 흑만 잡음), 선이선(先二先 흑2번 두점치수1번)과 같은 치수제로 실력의 높고 낮음을 나눴다. 4판 이상의 승수차이가 나면 치수를 바꿨는데 이런 식의 치수고치기를 ‘쟁기(爭棋)’라고 했다. ‘선(先)’은 덤 없이 흑을 잡는 것을 뜻한다.
우칭위안의 상상력은 덤없는 바둑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소년 우칭위안은 ‘괴동환(怪童丸)’이라 불리며 동시대 일본바둑의 촉망받는 인재이자 바둑 선배였던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1909년~1975년)를 상대로 자신의 발상을 시험한다.
1928년 가을, 14세의 바둑신동 우칭위안은 어머니 서문(舒文), 맏형 완(浣)과 일본에 왔다.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와 일본 바둑계인물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우칭위안은 독학을 통해 13세에 일본 중견프로와 선으로 동등하게 둘 수 있었다. 1929년에는 4단들을 선으로 연파해 드디어 괴동환 기타니 미노루와 숙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이때 엄숙한 승부를 기대하던 기타니는 흉내바둑을 보고 큰 모욕감을 느낀다. 이 바둑은 덤의 부담이 없는 흑(우칭위안)이 중앙 천원에 첫수를 두고 나머지를 백과 똑같이 대칭되는 점에 따라두는 흉내바둑이었다. 덤이 없다면 흑은 언제나 이 수법을 통해 어떤 상대든 편하게 상대할 수 있다. 바둑판의 좌표는 상하좌우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교대로 한수씩 두므로 언제든 그 대칭을 둘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우칭위안은 이때부터 중앙의 가치, 혹은 전체 바둑의 균형을 위주로 한 포석과 정석의 활용에 대한 ‘신포석’을 나름 구체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칭위안의 흉내바둑은 이후 ‘덤’이란 개념과 룰을 도입하게 한 촉매제가 되었다. 덤이 있는 현대바둑은 그 이전 덤이 없는 치수제 바둑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길을 걷게 된다.
○● 신포석
귀에서 변, 변에서 중앙으로 발전한다. 바둑의 논리다. 물론 타당하다. ‘신포석’은 이런 이론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우칭위안은 ‘전체의 균형’, ‘조화’를 중시하는 좀 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신포석이다. 신포석은 1933년 기타니 미노루와 우칭위안이 함께 제기했다. 야스나가 하지메(安永一)가 글로써 두 사람의 생각을 담았다. 세 사람의 공저가 된 [바둑혁명, 신포석]은 당시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야스나가의 시니컬한 ‘글빨’이 바둑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바둑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신포석과 바둑혁명’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말이다.
신포석의 ‘상징’이 된 사건은 일본의 마지막 바둑명인, 슈사이 명인의 환갑기념 대국이다. 기념대국에서 우칭위안은 3·三과 화점, 천원을 차례로 놓는 신포석을 시도했는데, 3·三을 포함한 이런 수법들은 당시 소목중심의 일본바둑에서 ‘금기’의 수였다. 최병준 2014-06-17
더보기 : http://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13&num=519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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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근처에 새로 집을 장만한 장주주 9단과 루이나이웨이 9단이 바둑관계자들을 저녁식사에 초청했다.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루이 9단과 서툰 한국말로 술과 음식을 계속 권하는 장주주 9단의 모습은 한국기원에서 마주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분 좋은 자리에서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기자에게 "뻥치시네~" 라며 한국에서 배운 농담을 던지는 루이 9단 때문에 참석한 사람들은 연신 폭소를 터뜨렸다. 식사가 끝나고 술잔이 오가자 장주주, 루이 부부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원래 인터뷰를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으나 장주주,루이 부부의 최근 동정과 다양한 이야기를 바둑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대화의 일부분을 기사화 한다.
평소에 어떻게 지내나? 바둑을 제외한 일상이 궁금하다.
루이: 취미생활이 많은 편이다. 책도 많이 보려고 하고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붓글씨도 쓴다. 50세가 넘으면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 어릴 때 화가가 꿈이었다. 바둑이 너무 좋아서 그림은 배우다가 말았다.
장주주: 인터넷으로 카드게임(본인은 겜블이라고 말함)을 즐겨한다. 요즘은 책 쓰는 일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많지 않아 자주 못하는 편이다.
음식이 아주 맛있다. 평소에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 같은데?
루이: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다. 요리사이트를 보고 따라하는 수준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더 맛있겠지만 손님을 초대했으니 부족하더라도 직접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었다.한국 요리도 많이 배워서 순두부, 김치, 된장찌개도 가끔 해 먹는다. 이사하면서 갖고 싶었던 전자오븐도 장만했다.
장주주: 나는 뒷정리나 도와주는 정도이다. 이런 부분에서 0점짜리 남편인데 아내가 이해해 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어떤 여행이 기억에 남는가?
장주주, 루이: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미국 , 캐나다, 스위스, 체코, 그리스 모두 아름답다. 한국은 부안이 기억나고 경주도 가봤는데 대국 때문에 관광을 별로 못해 아쉽다. 왕십리(한국기원이 있는 동네)가 최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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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 http://cyberoro.com/news/news_view.oro?num=518171
오로IN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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