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다 요시오 9단에게 넉점에 이겼던 프랑스산 인공지능 바둑 크레이지스톤(오로 자료사진)이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도 승리를 거뒀다.



한때 일본을 대표했던 기사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이 인공지능과 접바둑으로 1승1패했다. ‘프로기사와 컴퓨터의 바둑 격돌’을 표방하는 전성전(電聖戦) 그 2회 대회가 21일 일본 도쿄전기통신대학에서 열렸다. 

요다는 인공지능 대표인 젠(Zenㆍ일본) 그리고 크레이지스톤(Crazy stoneㆍ프랑스)에게 넉점을 깔게 하고 대국했다. 요다는 젠을 불계로 이겼지만 크레이지스톤에 3집패했다.

두 프로그램은 앞서 15일~16일 열린 제7회 UEC배 컴퓨터바둑대회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한 작품. 지난 대회에도 이 두 작품이 인공지능 대표였는데 우승ㆍ준우승만 바뀌었다. 

지난 대회엔 사람 편에서 이시다 요시오 9단이 나와 역시 1승1패를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이시다도 젠에게 불계승하고 크레이지스톤에게 3집패했다. 

국후 요다는“수년 내에 프로 수준이 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고, 젠 개발팀 대표 가토 히데키(加藤英樹) 씨는 “지금부터가 어렵다. 눈에 띄게 강해지려면 10년 단위의 연구가 필요하다.”며 “장기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들이 프로 레벨이지만, 바둑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수광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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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badukad 2014. 3. 26. 14:52


이창호의 성품은 갑각류(甲殼類)

내가 아는 그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품이 그런 듯하고 철이 들기도 전에, 천하가 인정하는 대가(大家) 조훈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데다, 입단 이후 천하를 제패하기까지 대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홀로 커왔다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이 그 성품을 더욱 견고하게 지켜준 것으로 보인다(그가 큰 승부를 끝낸 뒤 그토록 말을 아끼고 어려워한 이유는 그 상대가 대부분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스승의 뒤를 이어, 바둑사상 두 번째 어린 나이로 프로의 관문을 돌파하고(86년 11세 입단) 그 4년 뒤 최고위전으로부터, 바둑천하를 세 번씩이나 완벽하게 평정했던 위대한 스승의 권위를 허물기 시작했는데 타이틀전선에 뛰어들어 최고의 자리를 향해 질주하던 이 시기에, 의사소통이 수월한 비슷한 세대의 동행을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늘 쟁쟁한 대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두터운 말문을 트고 속내를 편히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너무도 일찍 자기세대를 초월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타고난 겸허함과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영향을 생각하면 그의 성품이, 밝고 활달한 동년배들과는 대단히 이질적인, 때때로 음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갑각류(甲殼類)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갑각류는 두터운 외피 안에 어떤 류보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지고 있다. 이창호는 그런 사람이다.

91년의 기억 한 토막. 당시 이창호와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의 한일신예대표기사대결 5번기는, 한국의 정상과 일본 신인왕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승부결과가 어떻든 한국 쪽에 불리한 미스 매치였다. 이때의 한국바둑은 국제 교류전의 대상자선발에 관한 협의나 의전절차에 꽤 어수룩했던 것 같다.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정상이 신예대표기사라는 딱지를 달고 일본의 신인왕과 겨루는’ 언밸런스한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에게 상당히 분개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이런 관련 기사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정한 최강자가 되려면 이런 국제시합을 통해 감각과 훈련을 쌓아야 한다고. 이런 도전을 피하면 프로의 정당한 자세가 아니라고. 정말이지 그건 미스 매치의 구차한 핑계에 불과하다. 

요다가 도전해온 것이라면 파이트머니를 달리 할 수도 있고, 요다가 도전하는 외양을 갖출 수도 있다. 그건 전적으로 이벤트 입안자들이 협상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다. 1인자의 위상을 제대로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그게 할 소린가? 뭐, 이제 와서 지나간 일들을 시시콜콜히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때의 일들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다시금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으니까.

91년 2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아테네가든. 점심 휴식시간이 12시 30분부터 1시 10분까지였으니 12시 50분에서 1시 사이였을 것 같다. 대국장 옆으로 정원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쾌적한 휴게실이 있었는데 막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가 창가에 서서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격전장을 벗어나 승부를 잊고 바깥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동시에 ‘15세(15년 7개월) 승부사의 망중한(忙中閑)’이라는 카피도 떠올랐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초점을 맞추려는 순간 그가 돌아섰다. 그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의 눈 주위로 물결 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결코 휴식을 방해했다는 노여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2004-04-02 손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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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badukad 2014. 1.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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