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를 마치고 명동거리에서 한 컷. 왼쪽부터 김영삼 9단, 손혁 위원, 구명준 감독.


이세돌 9단이 직접 스케줄을 관리한다고요?

정: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이세돌 9단의 부진에 대해서도 한번 말해보죠. 작년 연말부터 극도로 좋지 않잖아요. 제가 보기엔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집중력 문제로 보이고, 이는 곧 체력의 문제로 보이는데...국내는 물론 중국 여기저기 대국에 행사에, 오버페이스한 여파가 아닌가 합니다. 야구로 치면 5일 로테이션을 지키지 않고 연투한 셈이죠. 자꾸 져 버릇하면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게 문제죠. 전에는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적수까지 "이젠 해볼만한 거 아냐?" 하는 자세로 덤벼들게 되는 게 승부세계의 속성입니다. 일인자의 프리미엄을 잃게 되는 거죠. 

김: 이창호 9단도 누가 곁에 있었으면 훨씬 오래 갔다고 봐요. 좀 쉬었어야죠. 20대 때야 피곤해도 한숨 자고나면 바로 컨디션이 회복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 회복시간이 예전 같지 않게 되죠. 마음이야 항상 청춘이고 항시 자신감이 앞서니 본인은 잘 감지하지 못합니다. 작년 12월 대국이 폭주할 때 제가 이세돌이었다면 염치불구하고 한국기원에 스케줄 조율을 부탁했을 겁니다. 하루건너도 아니고 결승대국을 연이어 치른 기전도 있었잖아요. 안타깝더라고요. 그 와중에 중국리그, 10번기 개막식 같은 데도 다녀오고...

손: (매우 놀란 표정으로) 그걸...스케줄을 본인이 다 짜요?

정: 바둑계는 아직 연예계나 스포츠계처럼 매니저나 에이전트를 둔 기사가 없습니다. 시장이 크고 작은 걸 떠나 그럴 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일 겁니다. 대국 폭주와 과다대국은 일인자라면 누구나 겪어온 일이긴 하지요. 잘 나가니까 아무래도 대국이 많을 수밖에요. 게다가 “누가 내 노후를 책임질 거야? 메뚜기도 한철인데...”라는 논리를 펼치면 그 누구도 선별출전과 휴식을 권할 수 없게 되지요.

손: 스트라이크 던지고 싶어도 볼이 될 때가, 정말 안들어갈 때가 있어요. 진짜 던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겠어요? 마운드에 오른 사람이잖아. 사이클 떨어지는 시점, 그러니까 체력이 떨어졌다든지 자신감이 떨어졌다든지 이럴 때 “체력이 부치는 거 같아...자신감을 잃었다”고 인터뷰하는 사람은 결코 없어요. 투수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체력이 떨어졌다는 말이에요. 절대 자기 입으로 실토 안합니다. 코치가 보기에 공이 높아지잖아요. 무릎각도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피곤하니까. 그렇지만 투수는 일년내내 이걸 했어요. 본인은 절대 몰라. 어느 순간 체력이 떨어진 걸 알지만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내내 준비해 오른 마운드잖아요. 자존심이죠. 정상권이면 더 자존심이 세요. 공 달라는 감독에게 버티는 투수를 가끔 보는 것도 그래서예요. 

그걸 조절해 주는 사람이 코치입니다. “야, 체력 떨어졌다 하루 쉬자.” 이러면 “저 괜찮은데요.” 이럽니다. “혁아. 요 경기보다 하루 더 쉬고 던지자.” 하면 인정합니다. 야구선수들은 시즌 끝나면 한달 동안은 여행하거나 친한 사람과 맥주도 한잔 마시고 이럽니다. 

이세돌 9단의 지금 상황이라면, 이럴 때 곁에서 가족여행 한번 다녀오면 어때? 하고 권할 사람, 한 대회 쉬고 어디 여행 갔다오는 게 어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코치가 있다면, 이세돌 9단이 어떤 성격인 줄 잘 모르겠는데 오히려 고마워할 거 같아요. 한 대회 안 나간다고 당장 추락하는 것도 아니고 길게 보면 이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배움보다는 대화할 상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심리상담 측면에서라도...


더보기(원문) : 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num=518781 정용진  2014-01-10 

by orobadukad 2014. 1. 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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