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이기겠다 그러나 다치길 원치 않는다

(중략)


김현진 씨는 대국장에서 딸의 사진을 찍었고 딸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아빠에게 뽀뽀 응원까지 했다. 중국 매체의 기자들도 혜림 양을 귀여워했다. 잔혹한 피의 승부 10번기와 뽀뽀 응원하는 어린 딸의 재롱은 회색과 오렌지색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예전 10번기가 어둡고 처절한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면 현대판 10번기는 뭔가 발랄하고 잔치 같다고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혜림 양으로 말미암아 그런 색은 훨씬 더해졌다. 적어도 아빠 이세돌에겐 최상의 기쁨을 주었고 긴장을 완화해줘 컨디션 조절에 일조했으리라. 

구리가 대국실로 입장하자 혜림 양은 엄마 손에 이끌려 포토라인 바깥으로 나왔다. 


▲ 이세돌의 부인 김현진 씨는 바둑을 거의 알지 못한다. 김현진 씨는 바둑에 관한 것은 남편을 통해 듣는다. 이세돌이 10번기 1국에서 이긴 뒤 현진 씨는 이세돌의 대국 명패를 기념으로 갖겠다고 들고 나왔다.



식욕 왕성한 이세돌 

한국에선 대국이 10시에 시작했으니 현지에선 9시였다. 촬영 허용 시간 15분이 지나고 대국실은 봉쇄됐다. 각자 3시간 55분에 초읽기 60초 5회였으니까 종국은 현지 저녁 7시나 8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긴 승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점심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았지만 점심을 선수들에게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국장 옆 휴게실에는 간식과 식사가 준비돼 있다. 스태프들은 대국장에서 나올지 모를 선수를 위해 긴장하면서 대기한다. 나는 선수들이 밥을 안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바둑을 두는데 밥 생각이 제대로 나겠나 싶었다. 특히 큰 대국 기간에는 잠도 잘 자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는 이세돌이라면 식사를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구리는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미리 이야기 해놨고 이세돌 또한 평소와 좀 달랐다. 이세돌은 오후 12시가 좀 넘자 대국실 문을 열고 나와 휴게실로 들어갔다. 선수가 원하면 즉시 먹을 수 있도록 스태프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세돌은 평소 좋아하는, 엄청나게 맵다는 ‘ㅅ’라면과 김밥 등을 먹었다. 

이세돌은 10분 만에 식사를 끝냈다. 김밥은 불고기가 들어가 있다. 겉보기엔 요기가 되겠나 싶어도 실제로 아주 포만감을 주는 것이었다. 한식대신 중국요리가 나왔어도 아무런 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세돌은 중국 음식을 아주 잘 먹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중국에서 십수년째 살면서 중국인과 입맛이 거의 같아진 이영호 씨와 흡사하다. 더구나 이세돌은 중국리그를 뛰면서 중국을 제집 들나들 듯하는 형편이니 항간에, 대부분 어웨이 경기로 치러지는 10번기가 이세돌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 형 이창호가 중국 일정이 있을 때마다 매니저 역할을 했던 이영호 씨가 이제는 이세돌이 최상의 상태에서 대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은 이영호 씨가 아빠의 대국을 기다리다 잠든 이세돌의 딸 혜림 양을 안고 숙소로 이동하는 장면.


이세돌은 이영호 씨와 농담을 하면서 후다닥 식사를 끝냈다. 이영호 씨는 이렇게 농담하는 것은 선수에게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밥 먹을 때 눈치 없이 바둑 얘기를 하면 그 밥이 넘어 갑니까?” 하고 묻는 게 이영호 씨의 지론이다. 이영호 씨는 원래는 이세돌의 통역만을 맡을 예정이었다가 10번기 이야기가 진척되면서 역할을 좀 추가했다. 이세돌이 10번기를 하는 데 필요한 제반의 영역을 맡는 것으로 말이다. 

김수광  2014-01-29 

더보기 : http://cyberoro.com/news/news_view.oro?num=518845

by orobadukad 2014. 1. 3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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