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호, 술자리에서도 작품을 위한 취재기회가 생기면 종종 이런 모습으로 돌변한다. (원래 인터뷰하려 간 자리가 아니어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곱지 않다.

윤태호, 바둑에 패션을 입히다, 미생 시즌2!
미생 시즌2, 바둑의 실리와 두터움을 세계관에 반영


굳이 인터뷰를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가벼운 술자리라고 하기에, 그들 둘만 마시기엔 가끔 대화가 끊기기도 하고 뭐 그러니까, '너도 따라올래?' 하는 권유에 냉큼 '그들 둘'의 술자리에 합류해버렸다. 

그들 둘 중 하나는 '윤태호'였다, 바둑에 '패션(Fashion)'을 입힌 창작자다. 또 다른 하나는 '손종수'. 윤태호 작가가 미생에서 어떤 패션을 택해야 하는지 많은 조언을 한 사람이며,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cyberoro.com)의 상무다. 

10월 21일, 오리역 부근 윤태호 작가의 오피스텔에서 그들 둘의 자리에 끼었다. 그동안 미생의 연재가 끝났고, 드라마 미생이 화제를 모았다. 만화작품으로서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들이었다. 이제 '미생2' 연재시작이 얼마남지 않았다. 두 사람은 미생 연재 전부터의 오랜 인연이 있으나 최근엔 만남이 뜸했다. 오랫만이니 덕담을 나눈다. 

"윤태호 작가는 바둑에 패션을 입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제가 입혔다기보단, 드라마 제작자들이 입힌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들 둘은 '우정'을 참 겸손하고 점잖게 나눈다.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만화 미생의 등장 이후에 바둑에 대한 선입관이 일부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얀 백발과 수염이 치렁치렁한 늙수구레한 산신령이 구름타고 다니는,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는 신선놀음이 바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였으나, 미생 이후 젊고 샤프한 연구생 출신 장그래의 리얼한 삶이 바둑에 투영됐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 시즌2'를 준비하는 동안 5kg이 빠졌다. 원래 큰키는 아니지만 어쩐지 미생1을 연재하던 초창기보다 더 어려지고 귀여워진 것 같다. 나이 든 엽기토끼, 마시마로를 보는 느낌이 들어 참지 못하고 덕담을 던진다. 

"어우, 귀여워지셨는데요.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봐요." 

"'건강해야한다'는 강박을 요즘은 버리고 산다"는 작가의 대답이 나온다. 곧 작가가 자주 가는 동네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맥주를 시키고 소주를 시키고 안주를 시킨다, 술이 먼저 나오고 안주가 준비되는 적당히 무료한 사이, 윤태호 작가의 질문이 손종수 상무에게 던져졌다. 


▲ 안주를 기다리는 사이, 손종수 상무(왼쪽)에게 윤태호 작가의 질문이 던져졌다. 처음엔 이렇게 테이블 밑에 취재노트를 놓고 마치 잠깐 메모하려는 듯 하더니...


○● 바둑에서의 유미(唯美)주의, 실리와 두터움

윤태호 작가는 '미생2'에서 창업을 한 지 얼만 안된 기업을 소재로 하려 한다. 미생 마지막 부분에서 이미 예고된 스토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업과 구성원들의 숙명적인 고민을 바둑에서 은유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개념들은 '실리와 두터움' 그리고 '빠름과 느림' '형식과 형식파괴'에 관한 것들이다. 

- (윤태호) 한국바둑이 가진 공격성, 자유로움이 형식에 치우친 일본바둑의 단조로움을 이겼다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 그렇다면 일본바둑의 형식미는 현대바둑에서 가치가 없는 것인가?

"(손종수)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대부분 좋은 모양이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바둑에서의 미적 감각은 수많은 고수들이 여러가지 수법을 검증해 확립한 것이다. 물론 정석의 효용은 바뀌며 어떤 정석은 유행을 타기도 하고, 때론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신수도 출현한다. 일본바둑이 한국바둑보다 유미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그 형식미는 기본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소주보다 먼저 나온 500cc 생맥주는 매우 차디차다. 아직 단 한모금도 입술을 적시지 않은 윤태호의 눈빛이 번뜩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먹잇감을 눈 앞에 둔 맹수의 눈빛'이 지금 윤태호의 눈빛이다. 붉으스름한 술집 조명이 불씨가 되어 작가의 눈동자에서 불기둥을 일으킨다. 분명하다. 음. 이건 술 먹자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기업에서의 '형식'에 관한 그의 해석이 이어진다. '회사가 들어놓는 보험, 규정과 절차는 때론 비용이고 번거롭기도 하다. 이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필요하기 때문이고 결국 효율적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창업한 회사는 그 비용을 더 빠르게 성장하는 '속도'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아마도 그 속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열망으로 인해 큰 사단이 나고, 장그래는 미생2에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창업한 지 얼마 안된 기업에게, 속도와 두터움의 선택은 본질적인 고민이다. 작품을 보는 사람은 흥미진진하겠지만 만화 속 장그래와 오차장은 아무래도 숨막히는 압박에 시달릴 것 같다.

- (윤태호) 바둑에서의 실리와 두터움, 그것을 기업과 연결시키는 지점을 찾고 있다. 

(손종수) "바둑계엔 '실리는 현금, 두터움은 수표(혹은 어음)'라는 말이 있다. 바둑에서의 실리는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현금에 곧잘 비유된다. 이에 비해 수표(어음)는 부도가 날 수 있다. 현찰로 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당장은 알 수 없긴 하지만 받았을 경우 당장의 현찰보다 큰 이익이 되기에 두터움을 택한다. 게다가 승부처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다. 조훈현 9단과 제자인 이창호 9단이 실리와 두터움을 상징한다. 속도로 상징되는 조훈현 9단이 실리를 먼저 챙겨가면 이창호 9단은 속도는 느리지만 두터움으로 스승을 넘어섰다." 

더보기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num=520947

by orobadukad 2015. 11. 2. 11:49


춘란배 결승2국 하루 전날인 15일 오후, 체단주보(體壇週報)의 시에루이 기자가 방으로 찾아왔다. 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전재현 과장과 기자는 호수 쪽으로 면한 테라스 문을 열어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물론, 그와 나의 대화는 전재현 과장의 동시통역에 의한 것이다). 

시에루이 “내일 대국(결승2국)을 어떻게 보냐?”

기자 “무서워서 말 못하겠는데? 당신들은 기사를 사실과 다르게, 쓰고 싶은 대로 쓰잖아. 나중에 무슨 욕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쓴웃음을 짓게 한 ‘이창호, 지하실 거주 사건’에 대한 ‘뼈 있는’ 농담이다. 이창호 9단의 열렬한 추종자(?) 시에루이 기자와는 오래 전에 소개를 받아 얼굴이 익숙한 데다 여러 차례 취재현장에서 마주쳐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 이 정도 조크는 자연스럽게 오간다. 전 과장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시에루이 기자는 유쾌하게 웃었다. 다소 과장된 제스처로 말하는 기자의 표정에서, 조크가 무겁지 않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 사진 : 결승1국이 끝난 다음날, CCTV와 씨에루이 기자가 이창호 9단과 짤막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서 있는 사람이 중국 체단주보의 씨에루이(謝銳) 기자.)

기자 “나는 이창호 9단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승1국도, 한때 저우허양 9단이 좋았던 적은 있지만 종반까지 이 9단이 승리할 기회가 더 많았다. 내용으로 봐서 이 9단의 대국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결승1국을 진 건 아쉽지만 그 정도로 흔들릴 이 9단이 아니다. 현재상태를 유지한다면 무난히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

시에루이 “이창호 9단의 우승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05-03-17 손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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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yberoro.com/column/column_view.oro?group=2&div=34&column_no=1711&pageNo=4&m_div=A2

by orobadukad 2014. 1. 20. 11:04


이창호, 슬럼프도 권태기도 아니다!

상하이로 출발하던 날(22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이창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덤덤했다. 물론, 웃으며 인사를 나누긴 했다. 익숙한 사람들과 마주칠 때 두 눈매와 입술이 아주 조금 부드럽게 휘는, 그것이 이창호의 뇌리에 입력된 '미소- 친근감의 표시'. 당대 최고의 승부사라도 타고난 성품이 과묵한 건 어쩔 수 없다. 나이 30을 넘기고도 그는 여전히 승부 이외의 일에 수줍음이 많다.

금강산대국(제48기 국수전 도전3국) 이후 하루를 쉬긴 했지만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쉽게 잊을 수 있는 아픔이 아니다. 도전무대에 올라 3연패로 밀려난 기록은 정상등극 이래 다섯 번째. 과거에도 없지 않았던 일이긴 하지만 그 세 번이 스승 조훈현과 공동연출했던 전대미문의 사제대쟁기(師弟大爭棋) 중 스승이 우위를 점하던(이창호가 1인자가 아니었던) 시기의 기록이었고 유창혁과 격돌했던 또 한번은 존폐 논란으로 승부욕이 사라진 패왕전(이창호를 3-0으로 뿌리친 유창혁은 결국, 비운의 마지막 패왕이 됐다)의 기록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국수전의 3연패와는 크게 다르다.

성급한 관측자들은 '이창호의 시대가 가고 최철한의 시대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신중한 정통 바둑저널리즘은 여전히 '이창호의 시대'에 무게를 둔다. 외형으로 드러난 기록으로만 보면 '이창호의 시대가 가고 최철한의 시대가 왔다'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국수전 3연패를 포함한 대 최철한전 8연패(속기전 제외. KBS바둑왕전, 한국바둑리그에선 이창호가 2승)가 그렇고 '기사생애 최악의 신년 스타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1승 5패의 참담한 성적도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5-05-24 손종수 

더보기 : http://www.cyberoro.com/column/column_view.oro?group=2&div=34&column_no=1709&pageNo=4&m_div=A2 

by orobadukad 2014. 1. 14. 10:00


이창호의 성품은 갑각류(甲殼類)

내가 아는 그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품이 그런 듯하고 철이 들기도 전에, 천하가 인정하는 대가(大家) 조훈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데다, 입단 이후 천하를 제패하기까지 대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홀로 커왔다는 특수한 환경의 영향이 그 성품을 더욱 견고하게 지켜준 것으로 보인다(그가 큰 승부를 끝낸 뒤 그토록 말을 아끼고 어려워한 이유는 그 상대가 대부분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스승의 뒤를 이어, 바둑사상 두 번째 어린 나이로 프로의 관문을 돌파하고(86년 11세 입단) 그 4년 뒤 최고위전으로부터, 바둑천하를 세 번씩이나 완벽하게 평정했던 위대한 스승의 권위를 허물기 시작했는데 타이틀전선에 뛰어들어 최고의 자리를 향해 질주하던 이 시기에, 의사소통이 수월한 비슷한 세대의 동행을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늘 쟁쟁한 대선배들의 울타리 안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두터운 말문을 트고 속내를 편히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너무도 일찍 자기세대를 초월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타고난 겸허함과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영향을 생각하면 그의 성품이, 밝고 활달한 동년배들과는 대단히 이질적인, 때때로 음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갑각류(甲殼類)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갑각류는 두터운 외피 안에 어떤 류보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지고 있다. 이창호는 그런 사람이다.

91년의 기억 한 토막. 당시 이창호와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의 한일신예대표기사대결 5번기는, 한국의 정상과 일본 신인왕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승부결과가 어떻든 한국 쪽에 불리한 미스 매치였다. 이때의 한국바둑은 국제 교류전의 대상자선발에 관한 협의나 의전절차에 꽤 어수룩했던 것 같다.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정상이 신예대표기사라는 딱지를 달고 일본의 신인왕과 겨루는’ 언밸런스한 이벤트를 기획한 사람에게 상당히 분개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이런 관련 기사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정한 최강자가 되려면 이런 국제시합을 통해 감각과 훈련을 쌓아야 한다고. 이런 도전을 피하면 프로의 정당한 자세가 아니라고. 정말이지 그건 미스 매치의 구차한 핑계에 불과하다. 

요다가 도전해온 것이라면 파이트머니를 달리 할 수도 있고, 요다가 도전하는 외양을 갖출 수도 있다. 그건 전적으로 이벤트 입안자들이 협상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다. 1인자의 위상을 제대로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그게 할 소린가? 뭐, 이제 와서 지나간 일들을 시시콜콜히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때의 일들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다시금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으니까.

91년 2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아테네가든. 점심 휴식시간이 12시 30분부터 1시 10분까지였으니 12시 50분에서 1시 사이였을 것 같다. 대국장 옆으로 정원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쾌적한 휴게실이 있었는데 막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가 창가에 서서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격전장을 벗어나 승부를 잊고 바깥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동시에 ‘15세(15년 7개월) 승부사의 망중한(忙中閑)’이라는 카피도 떠올랐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초점을 맞추려는 순간 그가 돌아섰다. 그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의 눈 주위로 물결 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결코 휴식을 방해했다는 노여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2004-04-02 손종수 

더보기 : http://www.cyberoro.com/column/column_view.oro?group=2&div=34&column_no=1699&pageNo=5&m_div=A2 

by orobadukad 2014. 1.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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